레이블이 아버지하나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아버지하나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6월 3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내게 남은 시간 5분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한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사형수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모임에 가담해 활동하던 중 1849년 이른바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체포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판결을 내렸다.
그 해 12월 22일 사형이 집행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세의 젊은 나이였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5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 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는 데 쓰고 싶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5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열심히 살면서 주옥같은 명작을 쓸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죽음 앞에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하겠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이 단 5분뿐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만하다 허무하게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영원의 시간 속에 순간과 같고 찰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짧은 시간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지만 과연 어떠한 삶이 후회가 없는 삶인지에 대해서는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6~8)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후회 없다고 자부한 사도 바울.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사명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후로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하는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사도 바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강조하면서 복음이 곧 새 언약임을 증거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린도후서 3:6)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사명으로 주신 새 언약은 무엇인가.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른지라 … 때가 이르시되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사도 바울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며 전했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신 ‘새언약 유월절’이다.
새언약 유월절이야말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귀하고 복된 소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로써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마치 사형집행 직전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매 순간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죽음의 사슬에 매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언약 유월절의 기쁜 소식을 속히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새언약 유월절을 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성령과 신부되신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교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새언약유월절을 지킵니다.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It’s oky!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 하면 아버지만 떠올린다.
마태복음 6장 9절의 기도문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수없이 암송해왔고 귀에 익숙해진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기독교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Is It Okay to Call God "Mother"?: Considering the Feminine Face of God’이라는 책인데, 대략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는 거지?’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하나님의남성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여성적인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성경적 근거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적인 하나님의 모성을 역설하면서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불러야 할 것을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글 중에서 특별히 시선이 멈춘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If we here on earth believe that a child grows up best with a father and a mother doesn't it also make sense that as a child of God we have a Heavenly Father and a Heavenly Mother?

(이 땅에서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심으로써 최상의 양육을 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자녀 또한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찌 이해되지 않습니까?)”

이 책의 내용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발견하고 인식했다는 점에서 크리스천들에게 너무나 쇼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많은 언론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www.watv.org ‘스페셜 리포트’ 참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4장 26절을 통해 증거한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곧 우리 어머니”라는 말씀을 처음 보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

필자도 처음에는 어머니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쉽지 않았다.
하도 금시초문 생소한 표현이라 한동안 당황했었지만, 성경에 있는 진리를 어찌 부인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옛말에 사람은 견문이 넓고 도량이 넓어야 하며,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 같다.


출처: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는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2014년 10월 6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양성(兩性)은 왜 존재할까?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평생 동안 이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성의 존재를 당연시 여겨왔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에게는 당연한 이 사실이, 수십 년째 생물학계 연구문제 중 ‘여왕’으로 꼽히고 있다.
이화여대 자연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그가 저술한 ‘다윈 2.0’을 통해 양성생식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종족보존을 위해서는 양성생식보다 암컷만으로 개체 증식을 하는 단성생식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재천 교수는 “단성생식에는 필요치 않는 엄청난 비용을 양성생식은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짝짓기를 위해 목숨을 거는 동물들도 있다.
화려하고 거대한 날개의 주인공 공작새 수컷이 한 예다.
공작새 수컷은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포식동물의 눈에 띌 것을 알면서도 화려한 날개를 펼쳐보인다. 목숨을 건 구애과정인 셈이다.

양성생식은 당연하다고 말하기에는 힘든, 수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을 비롯해 대부분의 생물은 양성생식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수많은 학자들이 수많은 이론을 내놓고 있다.
물론 이는 ‘그럴 것이다’라는 가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확실한 답을 알 수는 없을까?
필자는 만물의 이치를 세우신 하나님을 통해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보다 그 답을 확실하게 알 분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보면 당신의 신성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을 통해 생명을 잇는 이 만물의 이치 또한, 하나님의 신성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신 단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양성의 존재와 하나님의 신성과는 어떤 관계일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가리켜 복수명사인 ‘우리’라고 표현하셨다.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이라면 굳이 복수명사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남성적인 형상만 계신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여성적인 형상도 계신다. 그래서 복수명사인 ‘우리’라고 한 것이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이 남성적 형상의 아버지 하나님만 계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성경은 여성적인 형상의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도 계신다고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
남성과 여성의 존재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생명을 잇도록 한 이치.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었을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