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6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대통령 표창 수상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의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교회
지속적인 봉사활동의 결과로
제20주년 바다의 날을 맞아
단체상으로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지난 8일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가운데)가 김영석 해양수산부 차관(왼쪽)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5년 6월 3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내게 남은 시간 5분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한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사형수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모임에 가담해 활동하던 중 1849년 이른바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체포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판결을 내렸다.
그 해 12월 22일 사형이 집행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세의 젊은 나이였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5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 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는 데 쓰고 싶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5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열심히 살면서 주옥같은 명작을 쓸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죽음 앞에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하겠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이 단 5분뿐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만하다 허무하게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영원의 시간 속에 순간과 같고 찰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짧은 시간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지만 과연 어떠한 삶이 후회가 없는 삶인지에 대해서는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6~8)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후회 없다고 자부한 사도 바울.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사명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후로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하는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사도 바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강조하면서 복음이 곧 새 언약임을 증거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린도후서 3:6)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사명으로 주신 새 언약은 무엇인가.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른지라 … 때가 이르시되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사도 바울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며 전했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신 ‘새언약 유월절’이다.
새언약 유월절이야말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귀하고 복된 소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로써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마치 사형집행 직전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매 순간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죽음의 사슬에 매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언약 유월절의 기쁜 소식을 속히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새언약 유월절을 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성령과 신부되신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교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새언약유월절을 지킵니다.

2015년 4월 9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동의 그곳이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경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을 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는 결코 지금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이라 할 수 없다.
성벽 하나 남아 있는 중동의 예루살렘이 보좌에 앉을 수도 없으며, 찬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위의 성경구절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동의 그 곳이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진출처 [The Western Wall by Golasso]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구원을 베푸시는 성령과 신부를 보았다.
성령 하나님과 신부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값없이 인류에게 전해지는 장면에서 성경은 끝이 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바로 전장에서 여기 나타난 신부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리고 결국 천사를 통해 신부에 대해 확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요한계시록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사도 요한을 데리고 간 천사가 보여준 신부는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던 사도 요한이 이를 보고 마치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고 기록했다(요한계시록 21:2).
분명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니다.

갈라디아서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

하늘에서 내려온, 사도 요한이 보았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그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시다. 그런데 이 짧은 성경 구절 속에 우리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의 어머니’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것과 또 ‘우리’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어머니’에 대해 살펴보자.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든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모체가 필요하다.
즉 생명은 어머니로부터 이어 받는다.
육신의 생명은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영의 생명은 바로 영의 어머니를 통해서다.
성경에 과연 영의 어머니가 존재하는가.

창세기 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하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데 왜 ‘나’라고 단수의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의 표현을 쓰셨을까.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도 ‘남자’와 ‘여자’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분명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 하시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영의 생명을 위해서는 분명 어머니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그 어머니 하나님의 등장을 성경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이 ‘하늘 어머니’라는 데 그 답이 있다. 어머니의 존재는 생명을 잉태하고 낳으며 기르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희생한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셔야 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온 이유는 바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이다.

요한일서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인 영생은 영의 어머니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실 수 없기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결국 희생이라는 길을 택하셨던 것이다.

이사야 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하늘에서 이 땅까지의 멀고 먼 여정을 오로지 자녀 사랑으로 감내하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시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




이 성경구절 속에 담긴 뜻 중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갈라디아서 4:28~31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우리’라는 대상은 이삭과 같은 존재다. 이삭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축복해 주셨다. 아브라함 가정에는 이삭 외에 하갈이라는 종의 몸에서 장자인 이스마엘을 얻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직 이삭에게만 유업을 주겠다 약속하셨다.

창세기 17:18~19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상속자의 조건은 아버지가 낳은 자녀가 아니었다. 만약 아버지의 피만 이어 받아도 상속자의 조건이 된다면 14년이나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당연히 상속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셨다. 이는 상속자의 조건이 바로 어머니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어머니인 사라를 통해 태어난 자만을 상속자로 정하겠다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이삭과 같은 자녀라고 하신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가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라는 것을 밝혀두셨다.

갈라디아서 4: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하늘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종의 자녀가 아닌 오직 어머니로 말미암아 상속을 약속받은 이삭처럼 하늘 어머니를 믿음으로 구원을 약속받은 자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곧 이삭과 같이 어머니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자녀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영생을 받을 수도 없다.
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은 최종적으로 어머니로 말미암아 완성되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7일 화요일

뭘까요??


어릴 때 자주 보던 매직아이를 만들어 봤습니다.



보이시나요? ㅎㅎ

2015년 3월 12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밤새 빙판길을 깬 이유

 
 
하룻밤 사이 많은 눈이 내려 작은 시골 동네가 눈으로 덮였다.
아침이 되자 마을 사람들이 각 집앞의 눈을 쓸었고
지방청에서도 마을 앞 도로의 제설 작업을 진행해 눈은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눈이 치워지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 곳은 마을과 도로가 연결되는 약 십 미터 정도의 길이었다.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는 그 십 미터의 길은
찬 바람을 맞으며 더 단단한 빙판길이 되었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도로로 나갈 때 다른 길로 빙빙 둘러갔다.
 
하지만 불편하다 불평을 하면서도
어느 누구 먼저 얼음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젊은 부부가 이 마을로 이사 온 다음 날
빙판길이 말끔히 깨어졌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이사하느라 피곤할 텐데
어떻게 밤새 얼음을 다 제거했느냐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당연히 해야지요. 우리 어머니께서 걸으신 길인 걸요.'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여러 장벽이
우리를 막는다 하여도 멈춰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무엇이 길을 막으려해도
또 피우고 또 걸어야하며 또 또 걸어야함은
우리가 가는 천국 길 하늘어머니 앞서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 3월 11일 수요일

스마트폰 SD카드 오류

 
 
스마트폰 SD카드를 사용하는데 갑자기 SD카드가 비어있다고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당황스럽고 간담이 서늘해지는데요.
 
먼저 리더기에 SD카드를 넣고 컴퓨터로 연결해보면..
 
 
 
 
 
F: 드라이브의 디스크를 사용하기 전에 포맷해야 합니다.
형식을 저장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세지 창이 뜹니다.  취소 버튼을 눌러야겠죠?
 
간단하게 복구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 윈도우키+X 명령프롬프트(관리자)를 클릭

 



- 실행창이 열리면 cmd 를 입력후 확인



 

- chkdsk f: /f 를 입력 후 엔터



  chkdsk 는 체크디스크를 실행하는 명령어
f: 는 F드라이브를 지정하는 명령어
  (SD카드가 연결된 드라이브를 잘 확인하여 입력)
  /f 는 디스크의 오류를 고치라는 명령어



- SD카드 오류수정이 끝났다는 메세지 확인





- 내컴퓨터에서 F드라이브를 보면 정상적으로 용량이 보임





6. 액세스할 수 없다는 메세지는 사라지고 정상적으로 폴더들이 열립니다.


*주의*
만약 오류수정이 되지 않으면 SD카드가 논리적인 오류가 아닌 칩배드가 발생된 경우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테스트는 하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전문복구센터에서 점검받고 복구 의뢰하기를 추천합니다.

2015년 3월 9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순리를 따라 허락되는 영생

 
 
성령과 신부되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 함께 하시는곳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의 가르침에 따라
새언약의 모든 절기를 지키는 교회
하나님의교회 
 



 
성경은 이 땅에 있는 것들의 실상이 하늘에 있다고 알려주고있습니다(히 8:5).
우리에게 육의 몸이 있듯이 장차 구원받아 하늘로 돌아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새롭게 태어날 신령적 형체도 있습니다. 우리를 낳고 기르신 육의 부모님이 계신 것처럼 우리를 하늘의 신령적 형체로 낳고 변화시켜 주실 영의 아버지와 영의 어머니가 존재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서 발견해볼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하늘의 뜻을 깨닫고 따라가는 것이 순리이며, 무슨 일이든지 순리대로 할 때 잘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순리라는 말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만물의 이치 속에 있으니 만물의 이치를 따라가는 것이 바로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계 4:9-11 "...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실 때 당신의 뜻을 그 속에 담고 창조하셨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남자가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것처럼 남자로 지음을 받았을 때는 남자로서, 또 여자로 지음을 받았을 때는 여자로서 행할 도리가 있으니 이를 해야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결국 순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섭리가 하나님의 뜻이요 이를 따르는 것이 순리라 했으니 순리를 따르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찾아봅시다.
 
요일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형적인 만물을 통해 하늘에 존재하는 그 실체를 알려주셨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구약과 신약 자체가 옛 약속과 새 약속을 각각 뜻하므로 신구약 성경 전체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어떻게 허락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신 이치 속에 이미 우리에게 그 답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6일 창조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이 때 남자인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하와를 지으심으로 모든 창조사업을 끝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돕는 배필'로 여자를 창조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남자가 할 수 없는 일, 곧 생명을 낳는 역할이 여자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모체를 통해 태어납니다. 어머니로 말미암아 생명을 이어받는 이러한 만물의 이치는 곧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의 이치를 알려주는 섭리입니다.